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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8. 10:27 - 제도샤프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 ① - 항공기 스포터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사진을 찍습니다. '자신만의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카메라가 좋아서'찍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주로 매니아층이 되겠지요. 일반 사람들에게 사진을 왜 찍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남는건 사진 뿐이니까' 라는 대답이 돌아올겁니다. 요새는 아마 여기에 '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 올리기 위해서' 라는 답변도 종종 나올 것 같군요. 자기PR시대라고, 남에게 자신의 일상을 자랑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으니까요. 과연 찍는 목적만 다양할까요? 찍는 대상들도 천차만별입니다. 연예인을 주로 찍는 사람들, 셀카를 찍는 사람들,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사람들, 일출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금강송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그 바리에이션은 굉장히 넓어서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개중에는 정말 쓸모없어보이는 것들만 찍는 것 같아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굉장히 쓸데없어보이는 촬영도 모두 저마다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 ① - 항공기 스포터



항공기 스포터


오늘 소개해드릴 사람들은 '항공기 스포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항공기 스포터는 비행기를 주로 찍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가끔 공항의 활주로 주변에 가면 기다란 대포같은 렌즈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는데요, 간첩이 아니라 스포터랍니다. 왜 찍느냐구요? 이들은 자신이 본 항공기를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주로 항공기 측면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으며, 엔진, 주날개, 수직미익과 같이 항공기를 구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잘 드러나게 촬영합니다. 찍은 항공기를 항공사와 등록번호별로 분류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도 하고, 보기 드문 비정기 항공편이 나타나는 날이면 사진기에 그 기종을 담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항공기를 넘어 비행 관련 시설물을 포함해 그 영역이 굉장히 넓어지기도 합니다. 공중에 날아가는 피사체를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스포터들에 비해 전문적인 장비를 찾추는 경우도 많습니다. 멀리 있는 항공기를 잡아내기 위한 망원렌즈, 빠른 피사체를 잘 잡아내기 위해 성능 좋은 렌즈/바디를 구비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하늘에 지나가는 항공기를 촬영하기 때문에 날씨도 큰 영향중 하나인데, 사진을 찍으러 가는 날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 보정을 위하여 로우로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다 같은 비행기 사진 아니냐.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면 비행기지 그게 어떻게 다르느냐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항덕> 들에게는 모두 다른 사진입니다. 같은 B777이라는 기종이더라도 B777-300인지, ER기종인지, LR인지 구분할 뿐만 아니라 기체별로 어떤 엔진이 달린 모델인지 소리만 듣고도 알아맞추기도 합니다. 등록번호 하나하나마다 각자 다른 역사와 이력을 가지고 있고, 어느 노선에 투입되는 어떤 편명을 가진 항공기인지 매칭시키는것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 끝없이 알고싶고, 끝없이 파고드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공기 스포팅은 항덕들이 항공기의 매력에 빠져 항공기에 조금 더 다가가려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행기의 매력에 빠져 전문적으로 스포팅하는 분들은 일본과 독일, 영국 등 해외에서는 어느정도 활성화되어있는 카테고리의 사람들입니다만, 한국의 경우에는 항공 산업 규모 및 항공 수요에 비하여 항공기 스포팅의 발달이 상당히 더딘 편입니다. 이미 국내 공항과 항공사들은 각종 상들을 휩쓸고 있으며, 항공사들도 서비스와 운항관리면에서 인정받는 수준으로 진입했습니다. 항공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꽤나 앞선 나라에서 왜 스포팅이 더디냐 하면, 바로 분단으로 인해 공항을 비롯한 주요 공공 시설물들이 군사 보안을 이유로 접근이 차단된다는 것 때문입니다. 또한 민항산업의 급격한 발전으로 과도기적 시기가 짧았던 것도 이유일 수 있겠죠. 요즘은 에어쇼 등의 행사로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갈길이 멉니다. 


동반되는 규제는 산넘어 산입니다. 수신용 리시버로 항공 관제를 수신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지만, 이마저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live ATC라는 교신 청취 사이트에서도 국내 공항은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지요. 사진 촬영에 있어서도 제한점이 많습니다. 김포공항 전망대에는 사진촬영 금지 표지판이 붙어있고, 김포공항 14번 활주로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으면 출입금지구역이라면서 발포한다는 경고방송이 들려옵니다. 오성산 포인트쪽에서 사진을 찍어도 간단한 경고방송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항 주변으로는 수시로 공항관리당국의 노란 순찰차가 돌면서 이같은 사항을 위반하는지 체크가 이루어집니다. 딱히 잘못한게 없고 보안시설물을 촬영하지 않더라도 걸리게 되면 SD카드를 포맷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2편에서 다루는 <길거리 스포터>들의 가장 큰 논쟁거리가 피사체의 초상권과 같은 권리적인 부분이라면, 항공시 스포터가 신경써야 할 부분은 바로 국내 법규입니다. 어찌 보면 더 간단하고, 또 어찌 보면 더 복잡한 부분이지요.



외국에는 어느정도 스포팅 문화가 퍼져있고, 스포터들간의 교류도 활발합니다. AIRLINERS.NET 이라는 큰 규모의 스포터 웹사이트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항공기 사진이 올라오고, 기반 커뮤니티의 교류 또한 활발합니다. 우리나라의 열정적인 스포터 분들도 활동하고 계시지만, 아직까지는 그 수가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동안 분단국가라는 특성상 국내 지도 반출 금지와 같이 폐쇄적인 규칙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이제는 시대에 발맞추어 개방하고 또 공유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무조건 규제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단통법)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고 있으며, 항공기 스포팅 역시 마찬가지로 국가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아닌 만큼 스포터들의 자유도를 조금 더 높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항 주변을 지나다니다 제방이나 도로 가장자리에서 카메라나 무전기, 혹은 노트북을 들고 서성이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정말 수상한 사람이 아닌 이상 간첩이 아니라 항공기 촬영을 좋아하는 항공기 스포터들이랍니다. 관련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도 아니며, 단순히 비행기가 좋아서 찍는거예요. 딱히 손 안흔들어주셔도 되니까 공항관리당국에 신고만 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해당 포스팅은 필자가 항공 팀블로그 Symphony of the SKY에 2012년 7월 투고한 <항공기와 동고동락하는 스포터들의 자유를 존중해주세요> 를 리비전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